뱃속에 들어간 여우와 귀신 狐鬼入腹
시랑侍郎 이인배李因培1의 아들 이익李鷁은 자字가 의산醫山이고 신사년辛巳年(1761)에 한림원翰林院에 들어갔다. 시와 문장을 잘 짓고 또한 송대宋代 유가儒家의 이학理學을 좋아했다.
어느날 이익이 등불 아래에서 책을 읽는데 문득 두 절세미녀가 나타났다. 미녀들이 장난을 치고 친한 척 굴었지만 이익은 흔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이익이 저녁식사를 마쳤을 때, 갑자기 뱃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식사에 나온 가지에 내 영혼을 붙였다. 네가 가지를 먹었으니 나를 먹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이미 네 뱃속에 들어 앉았는데, 어떻게, 또 도망쳐 볼 테냐?”
바로 등불 아래로 다가왔던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 뒤로 이익은 두 눈을 부릅뜨고 혼란에 빠진 건지 바보가 된 건지 모를 상태가 되곤 했다. 간혹 제 손으로 제 뺨을 후려치기도 하고, 어쩌다가 큰 비가 내리면 머리에 돌을 얹고 빗속에 꿇어 앉아서는 옷이 다 젖어도 감히 실내로 들어가지 못했다. 때때로 남에게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절을 올리며 기도를 하기도 했는데 옆에서 아무리 일으키려 해도 일어나지 않았다. 얼굴은 누렇게 뜨고 몸은 야위어서 날이 가면 갈수록 위태로워 보였다.
귀신은 종종 이 군의 손을 움직여 글을 써서 다른 사람과 대화했다.
이익의 진사進士 동기인 장사전蔣士銓2이 찾아가서 물었다.
“그대는 외모가 상당히 아름답다던데, 왜 나는 유혹하러 오지 않고 이 군만 따라 다니는가?”
이익은 손으로 두 글자를 적었다.
“인연이 없다[無緣].”
장사전이 다시 물었다.
“절세가인絶世佳人이 어찌하여 뱃속 더러운 것들 가운데로 자리를 잡으셨나?”
이익은 두 글자로 욕했다.
“천박한 놈[下足].”
당시 강서순무江西巡撫였던 오吳 공公이 이인배와 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이익을 부르고, 장張 천사天師3를 초빙하여 등왕각滕王閣에 제단을 설치했다. 목욕재계를 사흘, 주문 외우기를 사흘 한 뒤 장 천사 휘하의 도사道士가 팻말을 내걸었다.
<3월 15일 요물 퇴치>
그날이 되자 구경꾼이 벌떼같이 몰려 들었다. 천사가 상석에 앉고 도사가 그 곁에 앉은 다음, 이익에게 무릎을 꿇고 도사를 향해 입을 벌리게 했다. 도사가 두 손가락을 뻗어 이익의 입에 밀어넣더니 손을 움켜쥐고 내던졌다. 고양이만큼 작은 여우 한 마리가 입 안에서 끌려나왔다. 여우는 곧바로 소리를 질렀다.
“내가 언니 대신 상황을 보려고 했는데 붙잡혀 버렸어! 언니는 조심하고 나오지 마!”
뱃속에서 대답이 들렸다.
“그럴게.”
그리하여 뱃속에 아직도 요물 한 마리가 더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장 천사는 술단지에 여우를 넣고 부적으로 봉인하여 그것을 큰 강에 던졌다. 이익은 살짝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뱃속의 목소리가 크게 탄식하더니 말했다.
“내가 너하고 전생에서부터 이어진 원한이 있다. 그래서 너를 찾아 보았으나 찾아내지 못하였기에 선고仙姑4에게 함께 오자고 했던 것이다. 그 바람에 선고까지 화를 당하게 만들었으니 나도 마음이 불편하구나. 더더욱 너를 용서할 수 없게 되었다.”
말이 끝나자 배가 아프기 시작해서 멈추지 않았다. 천사가 데려온 도사에게 물었다.
“이 한림을 구할 수 있겠느냐?”
도사는 거울을 꺼내 그의 배를 비춰보고서 대답했다.
“이건 이 한림과 전생에서 얽힌 원귀冤鬼이지 요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법록法籙으로는 대응할 수 없습니다.”
천사는 오 공에게 그렇게 전해 주었다. 오 공 역시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이익을 집으로 돌려보내 요양하게 하였으나, 끝내 죽었다.
○ 狐鬼入腹
李鶴峰侍郎之子鷁, 字醫山, 辛巳翰林, 能詩文, 兼好宋儒理學. 燈下讀書, 忽兩女子絕美, 來與戲狎, 李不爲動. 少頃, 李晚膳畢, 忽腹中呼曰: “我附魂茄子上, 汝啖茄即啖我也, 我已居汝腹中, 汝復何逃?” 即燈下女子聲. 李自此兩目瞠然, 若迷若痴. 或以手自批其頰; 或大雨, 首頂一石跪雨中, 衣裳淋漓, 不敢入內; 或對人膜拜, 拉之不起. 面色黃瘦, 日漸不支. 鬼常借李君手作字, 與人酬答. 其同年蔣君士銓往視之, 問: “汝貌甚佳, 何不來誘我, 而必從李君耶?” 李手書二字曰: “無緣.” 蔣又問: “汝絕世佳人, 何爲居腹中汚穢之地?” 李手書二字罵曰: “下足.”
時江西巡撫吳公, 與侍郎善, 乃招李往, 爲延張天師設壇於滕王閣. 齋三日, 誦咒三日, 其法官懸牌曰: “三月十五日拿妖.” 臨期觀者如堵. 天師上坐, 法官旁坐, 令李跪, 張其口向法師, 法師伸兩指入其口, 撮而擲之. 一小狐如貓, 從口中出, 呼曰: “我爲姊探信, 不料被擒, 姊慎毋出.” 腹中應聲曰: “唯.” 方知腹中尚有一妖. 天師封符於罈, 投之大江. 李微覺神清, 而腹中歎息之聲大作, 曰: “我與汝有宿世冤, 因尋汝不着, 故拉仙姑同來. 不料反爲彼禍, 使我心轉不安, 我愈不饒汝矣.” 言畢, 腹痛不止. 天師問法官: “李翰林可救乎?” 法官取鏡照其腹, 曰: “此是翰林前生冤鬼, 非妖也, 法籙不能治.” 天師以告中丞, 中丞亦無奈何, 仍送李還家養病, 遂卒.
- 이인배李因培(1717-1767)는 자字는 기재其材, 호號는 학봉鶴峰이며 운남雲南 진녕晉寧 사람이다. 1745년 진사進士가 되어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수여받고, 이후 여러 지역의 학사學士와 학정學政을 지냈다. 1753년 3월 형부시랑刑部侍郎이 되고 1763년에는 예부시랑禮部侍郎이 되었다. 원매와는 친한 사이로 종종 모여 시와 술을 함께하고 경치를 즐겼다. [본문으로]
- 장사전蔣士銓(1725-1785)은 자字는 심여心餘‧초생苕生‧거생蕖生이고 호는 장원藏園‧청용거사淸容居士‧정보定甫 등이다. 강서江西 남창南昌 출신으로 1757년 진사가 되어 한림원편수翰林院編修가 되었으나 1764년 관직에서 물러나 서원書院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원매‧조익趙翼과 함께 “강우삼대가江右三大家”로 불리기도 하며, 저서로는 『충아당시집忠雅堂詩集』의 일부와 『홍설루구종곡紅雪樓九種曲』 등 다수의 희곡 작품이 남아 있다. [본문으로]
- 천사天師는 본래 도교의 창시자로 알려진 장릉張陵(또는 장도릉張道陵, 34-156)을 가리키는 말이다. 장릉이 죽은 뒤에는 가장 지위가 높은 도사道士를 일컫게 되었는데, 주로 장릉의 직계 자손 또는 그 제자가 이어받으면서 20세기까지 전해내려왔다고 한다. [본문으로]
- 선녀를 가리키는 말로 여도사 또는 민간 신앙에 관여하는 여성에 대한 호칭으로도 사용한다. 여기서는 여우를 가리킨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