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벌로 번개 맞은 병졸 雷誅營卒
건륭乾隆 3년(1738) 2월, 병졸 한 명이 번개를 맞아 죽었다. 그 병졸은 평소 나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같은 군영軍營에 있던 늙은 병졸이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자는 요즘은 행실을 고쳐 착하게 지냈지만, 20년 전에 종군할 때 어떤 일을 저지른 적이 있네. 나는 당시 그와 같은 부대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사정을 잘 알지.
어떤 장군이 고정산皋亭山 쪽으로 사냥을 나갔을 때 그자는 길가에 막사를 세우는 임무를 맡았어. 해가 저물 무렵이 되자 젊은 비구니 한 명이 막사를 지나갔고, 마침 근처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서 그자는 비구니를 끌고 들어가 겁탈하려고 했다더군. 비구니는 몇 번이나 저항을 하다가 바지가 벗겨진 채로 도망쳤고, 그자는 반 리 정도 쫓아가다가 비구니가 한 농가로 도망쳐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 아쉬워하면서 돌아왔다고 하네.
비구니가 도망쳐 들어간 집은 남편은 밖에 돈을 벌러 나가서 젊은 부인 한 명과 어린 아이 한 명만 남아 있었는데, 비구니가 들어오려는 것을 보고 쫓아내려고 했지. 비구니는 부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하루만 묵어 가게 해 달라고 애원했고, 부인은 그 비구니를 불쌍하게 생각해서 집에 들이고 자기 바지를 빌려 주었네. 비구니는 사흘 뒤에 반드시 돌려주러 오겠다고 약속한 뒤 해가 뜨기 전에 그 집을 떠났어.
그 뒤, 남편이 돌아와서 더러워진 옷을 바꿔 입으려고 했네. 그런데 부인이 옷장을 열어 보았더니 남편 바지는 보이지 않고 자기 바지는 그대로 있었다지. 그제서야 새벽에 경황이 없어서 실수로 남편 바지를 빌려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부인이 제 잘못을 탓하느라 설명을 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아이가 낼름 말했다는 거야.
‘어젯밤에 스님이 와서 입고 갔어요.’
남편은 의심이 들어 아이에게 상황을 자세히 캐물었네. 아이는 스님이 밤에 와서 엄마에게 재워 달라고 애원했고, 그 다음에 집에서 하룻밤 잔 뒤 바지를 빌리고 날이 밝기도 전에 떠났다고 전부 말했다는군. 부인은 자고 간 사람은 스님이 아니라 비구니라고 애써 설명했지만 남편은 그 말을 믿지 않았고, 처음에는 욕을 하다가 나중에는 회초리까지 휘둘렀어. 부인은 이웃을 두루 돌며 남편에게 결백을 밝혀 달라고 호소해 보았지만 어두운 밤중에 일어난 일이라서 이웃 사람들은 다들 모른다고 할 뿐이었고, 억울함을 견디지 못한 부인은 결국 목을 매어 죽었다고 하네.
그 다음날 아침, 남편이 문을 여는데 비구니가 바지를 돌려주러 와서, 감사의 의미로 떡을 담은 바구니도 건네 주었네. 그러자 아이가 비구니를 손가락질하며 아버지에게 말했어.
‘이 사람이 저번에 자고 간 스님이에요!’
남편은 후회하면서 아들을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패서 부인의 관 앞에서 때려 죽이고, 남편 자신도 목을 매어 버렸지. 이웃 사람들은 이 일이 관아로 넘어가면 번거로운 일이 많이 생기겠다 싶어서 모두가 상의하여 가족의 시신을 수습하고 그 일은 묻어 버렸다고 하더군.
그 다음해 겨울, 장군이 또 그 지역에 수렵을 나갔을 때 그 지역 토박이가 그런 이야기를 해 주었네. 나는 누가 벌인 일인지 바로 짐작이 갔지만 이미 조용히 넘어간 일이기도 해서 따로 말을 하지는 않았네만, 그래도 그 사람에게는 예전에 몰래 말을 했었네. 그자 역시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그 뒤로 행실을 고쳐서 착하게 살았는데, 자기 죄를 덮이기를 바란 것 같아. 그래도 의외로 천벌은 결코 피해갈 수 없는 모양이네.”
○ 雷誅營卒
乾隆三年二月間, 雷震死一營卒. 卒素無惡迹, 人咸怪之. 有同營老卒告於衆曰: “某頃已改行爲善. 二十年前披甲時曾有一事, 我因同爲班卒, 稔知之. 某將軍獵皋亭山下, 某立帳房於路旁. 薄暮, 有小尼過帳外, 見前後無人, 拉入行奸. 尼再四抵攔, 遺其褲而逸. 某追半里許, 尼避入一田家, 某悵悵而返. 尼所避之家, 僅一少婦, 一小兒, 其夫外出傭工. 見尼入, 拒之. 尼語之故, 哀求假宿. 婦憐而許之, 借以己褲. 尼約以三日後當來歸還, 未明即去. 夫歸, 脫垢衣欲換. 婦啓篋, 求之不得, 而己褲故在; 因悟前倉卒中誤以夫褲借去. 方自咎未言, 而小兒在旁曰: “昨夜和尚來穿去耳.” 夫疑之, 細叩踪迹. 兒具告和尚夜來哀求阿娘, 如何留宿, 如何借褲, 如何帶黑出門. 婦力辯是尼非僧. 夫不信, 始以詈罵, 繼加捶楚. 婦遍告鄰佑, 鄰佑以事在昏夜, 各推不知. 婦不勝其冤, 竟縊死. 次早, 其夫啓門, 見女尼持褲來還, 並籃貯糕餌爲謝. 其子指以告父曰: “此即前夜借宿之和尚也.” 夫悔, 痛杖其子, 斃於婦柩前, 己亦自縊. 鄰里以經官不無多累, 相與殯殮, 寢其事. 次冬, 將軍又獵其地, 土人有言之者. 余雖心識爲某卒, 而事既寢息, 遂不復言. 曾密語某, 某亦心動, 自是改行爲善, 冀以蓋愆, 而不虞天誅之必不可逭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