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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불어] 0737. 관찰사 동용

눈기러기 2026. 7. 1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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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사 동용  董觀察

 

관찰사觀察使 동용董榕[각주:1]이 공남도贛南道에 부임해 있을 때, 그의 관할지인 상유현上猶縣 중 어느 마을은 평소에도 산에서 폭류가 흘러 넘치는 바람에 종종 밭이 잠기고 집이 무너지곤 했다. 동 공은 지형을 살펴보고 물길을 터서 폭류가 강으로 흘러 들게 정리했고, 그 마을의 백성들은 안심하고 살게 되었다. 동 공은 또한 절을 염계서원濂溪書院[각주:2]으로 바꾸고 건물을 새로 단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 공의 모친 정丁 태부인太夫人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지나칠 정도로 슬퍼하면서 자신도 따라 죽고자 하였다. 태부인의 관을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등왕각滕王閣 아래에 이르르자 배를 정박시켜 위문을 받았다. 높은 관리들도 몸소 찾아와 위문을 했고, 구경하는 사람들은 다들 동 공이 진정한 효자이고 진정한 관리라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닻줄을 풀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하인 등이 당황해서 동 공을 찾아 헤맸다. 끝내 찾지 못하자 급히 지방관에게 사정을 알리고 강을 따라가며 물속을 뒤졌는데 아무 흔적도 찾지 못했다. 하루가 꼬박 지났을 때, 시신이 강을 거슬러 올라간 풍성현豐城縣 쪽 모래 기슭에서 발견되었다. 검험하여 살펴보니 흰 옷을 입고 마끈을 두른 차림이었고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이에 동 공의 시신도 염해서 배로 보내 주었다.
그로부터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동 공의 옛 하인 모 씨가 우연히 상유현을 방문했다. 그 지역 사람이 동 공이 물길을 다스려 준 은혜를 기리느라 사당을 세워 동 공에게 제사를 올리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하인이 기쁜 마음에 사당으로 달려가서 신상에 절을 올리고 살펴 보았더니 신상의 생김새가 동 공과 똑같았다. 신상을 세운 날짜를 물어 보았더니 바로 공이 물에 빠진 날의 저녁이었다고 한다.


○ 董觀察
董觀察名榕, 官贛南道時, 所屬上猶縣某村, 素被山瀑衝沒田廬. 公爲相度開河, 引水入江, 居民安堵. 又改佛寺爲濂溪書院, 規模一新.
亡何, 丁太夫人憂, 哀毀過度, 欲以身殉. 扶櫬返里, 至滕王閣下, 維舟受唁. 大吏親來撫慰, 觀者無不謂董公真孝子, 真好官. 次早, 方欲解纜, 忽家僕等驚覓觀察不得, 急報守土官, 沿江打撈, 俱無踪迹. 經一晝夜, 尸竟逆流至豐城縣沙岸上. 驗視之, 猶白衣麻帶, 面目如生. 乃具殮送至舟中.
月餘, 公舊僕某偶至上猶, 土人告以感公開河之恩, 立廟祀公. 僕欣然走至廟中, 拜覘神像, 則儼然公之面目. 詢立像時日, 即公墮水夕也.

  1. 동용董榕(1711-1760)은 자는 염청念靑, 호는 항암恒岩‧정암定岩‧어암漁庵‧겸산謙山‧어산漁山‧번로루거사繁露樓居士‧하북풍윤인河北豊潤人 등이다. 주돈이周敦頤와 이정二程의 이학理學을 충실하게 추종한 학자로 『주자전서周子全書』, 『낙학편洛學編』, 『성학입문聖學入門』 등을 편찬하고 『지암기芝龕記』, 『경양집庚洋集』, 『번로루시繁露樓詩』 등을 저술했다. 당시 공주贛州에는 여자를 물에 빠뜨려 공양하는 악습이 오래 전해져 왔는데 이 풍속을 폐지하는 데에도 큰 공을 세웠다. [본문으로]
  2. 염계濂溪는 주돈이의 호로, 불교 사원을 없애고 유가의 서원을 증축했다는 뜻이다. 공주의 염계서원은 11세기에 세워졌다가 전화로 불탄 뒤 재건 및 여러 차례의 이전을 거쳤으며, 현재의 간저우 시赣州市 제1중학第一中學으로 이어졌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