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허주 曾虛舟
강희康熙 연간(1662-1722)에 증허주曾虛舟라는 사람이 있었다. 본인 말로는 사천四川 영창현榮昌縣 출신이라고 했다. 오吳와 초楚 지역을 다니면서 미친 사람인 양 지냈는데 신기하게 들어맞는 말을 많이 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남녀노소가 그를 에워싸고 다녔다. 증허주는 좋다고 웃다가 무시하며 욕을 퍼붓다가 했는데 그때 하는 말이 번번이 남이 몰래 숨긴 일을 맞추곤 했다. 간혹 좋은 말을 해 주면 그 사람은 크게 통곡하면서 떠나갔고, 간혹 매질을 하고 욕을 하면 그 사람은 예상보다 좋은 일이 생겼다는 듯 크게 기뻐했다. 질문한 본인은 이유를 알았지만 옆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항주杭州의 왕자견王子堅 선생이 노계현瀘溪縣의 지현知縣으로 있다가 파면된 뒤, 어떤 사람이 왕자견의 조상의 무덤이 풍수 상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그 말에 왕자견은 무덤을 이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실행하지 못하다가, 증허주가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물어 보려고 달려갔다. 그런데 증허주는 나무 봉을 들고 높은 흙무더기 위에 올라가 있고 사람들이 그 주위를 빽빽하게 둘러싼 상태라서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증허주는 멀리서 왕자견을 보자 봉을 휘둘러 때리는 시늉을 하며 욕을 했다.
“오지 마라, 오지 마! 네 이 놈, 시체를 파서 뼈를 훔치고 싶어서 왔구나, 안 된다, 안 돼!”
왕자견은 오싹해져서 돌아갔다.
훗날 왕자견의 아들 왕문선王文璿은 관직이 어사御史에 이르렀다.
○ 曾虛舟
康熙年間有曾虛舟者, 自言四川榮昌縣人, 佯狂吳楚間, 言多奇中. 所到處老幼男婦環之而行, 虛舟嬉笑嫚罵, 所言輒中人隱. 或與人好言, 其人大哭去; 或笞罵人, 人大喜過望. 在問者自知之, 旁人不知. 杭州王子堅先生知瀘溪縣事, 罷官後, 或議其祖墳風水不利, 子堅意欲遷葬而未果. 聞虛舟來, 走問之. 適虛舟持捧登高阜, 衆人環擠, 子堅不得前. 虛舟望見子堅, 遙擊以棒罵曰: “你莫來, 你莫來! 你來便想摳尸盜骨了, 行不得, 行不得!” 子堅悚然而歸. 後子堅子文璿官至御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