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자불어

[속자불어] 0876. 군교軍校의 부인

눈기러기 2026. 4. 2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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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교軍校의 부인 軍校妻

 

기윤紀昀 선생이 우루무치烏魯木齊에 있을 때의 이야기다.[각주:1]

하루는 보고가 들어왔다. 군교軍校 왕王 모某 씨가 군수물자 운송 업무 때문에 이리伊犁로 차출되고 그의 부인이 혼자 지내는데, 오늘은 한낮이 되도록 그 집 문이 열리지 않고 불러도 대답이 없으니 뭔가 사고가 생긴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적화동지迪化同知 목금태木金泰에게 가서 확인해 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각주:2]

사람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니 남녀 한 쌍이 나란히 베개를 베고 알몸으로 서로 끌어안고 누워 있는데, 둘 다 배를 갈라 젖힌 채로 죽어 있었다. 남자는 어디의 누구인지 알 수 없고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다. 이웃 주민들에게 꼼꼼히 확인했으나 단서가 아무 것도 없어서 의문의 사건으로 마무리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밤 여자의 시체가 갑자기 신음 소리를 냈다. 시체를 지키던 사람들이 놀라서 확인하니 여자는 숨이 돌아와 있었고, 다음날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죄를 자백했다.

“그 남자와는 어린 시절에 사랑하던 사이로 결혼한 뒤에도 계속 몰래 만나 왔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남편이 서성西城으로 주둔지를 옮기면서 제가 따라오느라 헤어졌는데, 그 사람은 저를 잊지 못하고 또다시 저를 따라 왔지 뭡니까. 저희 집 문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방 안으로 들여보냈기 때문에 이웃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는 잠깐 만나고 영영 이별할 생각을 하니 너무 마음이 아파서 결국 함께 죽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배에 칼날이 박히자 극심한 고통이 느껴지면서 정신이 혼미해졌는데, 갑자기 꿈에서 깨는 듯한 기분이 들더니 영혼이 이미 몸을 벗어나 있었습니다. 급히 남자를 찾아보았지만 어디로 갔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하얀 풀과 노란 구름이 있고 사방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에 저 혼자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참 길을 잃고 헤매다 보니 어떤 귀신이 나타나서 저를 어떤 관아로  끌고 갔고, 그곳에 도착해서는 심하게 비난과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곳의 관리가 ‘비록 부끄러운 줄 모르고 죄를 짓긴 했으나 수명이 아직 남았다’면서 장杖 100대를 친 다음 쫓아내서 이승으로 돌려보내라고 화를 내더군요. 철로 주조된 막대로 장을 치는 바람에 저는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도로 기절했습니다. 잠시 후 정신이 들고 보니 되살아나 있었습니다.”

여자의 허벅지를 살펴보니 정말로 장을 맞은 흔적이 여럿 남아 있었다. 주방대신駐防大臣 파공巴公이 판결했다.

“이자는 이미 명부冥府에서 처벌을 받았으니 간통죄에 대해서는 중복하여 처벌하지 않아도 좋다.”

 

기윤 선생의 《우루무치잡시烏魯木齊雜詩》에서는 이렇게 읊었다.

“원앙은 끝내 함께 날지 못하고

천상과 지상의 오랜 소원 엇갈렸구나.

흰 풀 우수수 휘어 객사한 이의 관을 덮으니

한평생 애끊는 마음 〈화산기華山畿〉 [각주:3] 같아라.

(鴛鴦畢竟不雙飛, 天上人間舊願違. 白草蕭蕭埋旅櫬, 一生腸斷華山畿.)”


軍校妻

紀曉嵐先生在烏魯木齊時, 一日, 報軍校王某差運伊犁軍械,其妻獨處, 今日過午, 門不啟, 呼之不應, 當有他故. 因檄迪化同知木金泰往勘. 破扉而入, 則男女二人共枕臥, 裸體相抱, 皆剖裂其腹死. 男子不知何自來, 亦無識者. 研問鄰里, 茫無端緒, 擬以疑獄結矣.

是夕, 女屍忽呻吟, 守者驚視, 已復生. 越日能言, 自供: “與是人幼相愛, 既嫁猶私會. 後隨夫駐防西城, 是人念之不釋, 復尋訪而來. 甫至門, 即引入室, 故鄰里皆未覺. 慮暫會終離遂相約同死. 受刃時痛極昏迷, 倏如夢覺, 則魂已離體. 急覓是人. 不知何往, 惟獨立沙磧中, 白草黃雲, 四無邊際. 正彷徨間, 爲一鬼將去, 至一官府, 甚見詰辱, 云是雖無恥, 命尙未終, 叱杖一百驅之返. 杖乃鐵鑄, 不勝楚毒, 復暈絕. 及漸蘇, 則回生矣.” 視其股, 果杖痕重疊. 駐防大臣巴公曰: “是已受冥罰, 奸罪可勿重科矣.”

先生《烏魯木齊雜詩》有曰: “鴛鴦畢竟不雙飛, 天上人間舊願違. 白草蕭蕭埋旅櫬, 一生腸斷華山畿.”

  1. 기윤紀昀(1724-1805)은 자字는 효풍曉嵐, 호號는 석운石雲, 도호道號는 관혁도인觀弈道人, 고석노인孤石老人, 시호諡號는 문달文達이다. 직예直隸 하간부河間府 헌현獻縣 사람이다. 1754년 진사가 되어 관직은 예부상서禮部尙書, 태자소보太子少保 등에 올랐고 《사고전서四庫全書》의 총편찬을 담당했다. 1768-1771년 사이 인척의 죄에 연루되어 우루무치에서 속죄贖罪한 기간이 있다. [본문으로]
  2. 1773년 우루무치동지烏魯木齊同知의 관직명을 적화동지迪化同知로 변경했다. [본문으로]
  3. 〈화산기華山畿〉는 현재까지 강소성江蘇省에 전해오는 민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함께 죽은 연인을 노래한다. 전설에 따르면 중국 남조 송宋 소제少帝 때 남서주南徐州에 한 남자가 살았는데, 화산 기슭華山畿에서 운양雲陽으로 가다가 객사客舍에서 한 여자를 보고 사랑에 빠졌고 결국 상사병으로 죽었다. 장례 행렬이 화산에서 출발하여 여자의 문 앞에 이르자 수레를 끄는 소가 움직이지 않으려 했고, 여자는 나와서 ‘화산 기슭에 살던 분, 당신은 나를 위해 죽었는데 나 혼자 누구를 위해 살까? 사랑하는 분이 불쌍히 여겨 주신다면 관도 나를 위해 열리겠지.(華山畿, 君旣爲儂死, 獨活爲誰施? 歡若見憐時, 棺木爲儂開.)’라고 노래했다. 그러자 관뚜껑이 저절로 열리고 여자가 관으로 들어가서, 결국 두 사람을 함께 묻었다고 한다. 그 연인의 무덤이 현재 요교진姚橋鎭 화산촌華山村에 남아 있는 ‘신녀총神女塚’이라고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