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자불어

[속자불어] 0923. 전 상서

눈기러기 2026. 5. 9. 20:55

지괴 > 속자불어

전 상서 錢尙書

 
상주常州 비릉현毗陵縣의 매곡선생梅谷先生 전춘錢春[각주:1]은 명明 숭정祟禎 연간에 남경호부상서南京戶部尙書를 지냈다. 어릴 때 천연두를 심하게 앓아서 목숨이 위험해진 적이 있었다. 그의 부친 계신선생啓新先生 전일본錢一本[각주:2]은 외아들 전춘을 유난히 애지중지했기에 아들을 품에 안고 차마 내려놓지 못했다. 한참 계단을 빙글빙글 돌며 서성일 때, 문득 허공에서 커다랗게 꾸짖는 목소리가 들렸다.
“착각해서 전 상서에게 천연두를 내린 자가 대체 누구냐, 태형 20대에 처하라! 서둘러 천연두를 치료할 약을 따로 내리도록 하라.”
그리고는 지붕 기와에서 콩을 뿌리는 듯한 소리가 나는 것이 들렸다. 품 안을 내려다보니 아들은 이미 병이 나아 있었다.
매곡선생은 소년티가 날 만큼 자란 후에는 항상 누각 위층 침상에 누워서 잠을 잤다. 어느 여름날, 우연히 선생이 다른 곳에 머무를 때, 어떤 하인이 몰래 그 침상에 가서 드러누웠다. 갑자기 정신이 멍해지더니 어떤 목소리가 호통을 쳤다.
“괘씸하구나! 괘씸하구나! 너는 뭐하는 자이기에 감히 이 침상에 눕느냐!”
잠에서 깨자 침상이 불안하게 휘청휘청거리고 있었다. 급히 일어나 보니 침상도 어느새 원래 자리가 아니라 방구석의 어두운 자리로 옮겨져 있었다. 그 뒤 그 하인은 매곡선생을 볼 때마다 황공해하였고 말을 건넬 때는 항상 무릎을 꿇고 말을 했다고 한다.


錢尙書
毗陵錢梅谷先生名春, 明祟禎間, 官南京戶部尚書. 幼患痘, 危甚, 濱死矣, 其父啟新先生以獨子鍾愛, 抱諸懷不忍棄, 方繞階行, 忽聞空中大聲叱曰: “誰錯行錢尚書痘者, 可笞二十! 速另降好痘.” 遂聞屋瓦有聲, 如撒豆然. 視懷中, 則已蘇矣. 成童後, 常臥樓上. 夏月偶他寓, 有傭私就其榻臥, 恍惚聞叱吒聲曰: “可惡! 可惡! 若何等人而敢臥此榻!” 覺搖搖不安. 急起視, 則牀已置屋角暗處, 非復臥所. 嗣後傭見梅谷先生甚畏, 輒長跪白事云.

  1. 전춘錢春은 상주부常州府 사람이며 자字가 약목若木이다. 만력萬曆 32년(1604) 진사가 되어 어사御史, 호광안찰사湖廣按察史, 광록경光祿卿, 호부상서戶部尙書 등을 지냈다. 방종철方從哲을 고발했다가 외지로 발령이 나고 위충현魏忠賢의 당에 탄핵을 당하는 등 굴곡을 겪었으며, 백성들에게는 존경을 받았다. 저서로 《호상오략湖湘五略》 등이 있다. [본문으로]
  2. 전일본錢一本(1546-1617)은 상주부常州府 사람이며 자字는 국단國端, 호號는 계신啓新이다. 만력萬曆 11년(1583) 진사가 되어 여릉지현廬陵知縣, 복건도어사福建道御史 등을 지냈으며, 장거정張居正을 탄핵했다가 관직에서 쫓겨나 평민이 되었다. 이후 경정당經正堂을 세우고 학문에 열중하여 계신선생啓新先生으로 불렸으며, “동림팔군자東林八君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태복시경太僕寺卿으로 추증되었다. 저서로 《상상관견像象管見》, 《상초像抄》, 《속상초續像抄》, 《사성일심록四聖一心錄》, 《범연範衍》, 《둔세편遯世編》 등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