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상서 錢尙書
상주常州 비릉현毗陵縣의 매곡선생梅谷先生 전춘錢春1은 명明 숭정祟禎 연간에 남경호부상서南京戶部尙書를 지냈다. 어릴 때 천연두를 심하게 앓아서 목숨이 위험해진 적이 있었다. 그의 부친 계신선생啓新先生 전일본錢一本2은 외아들 전춘을 유난히 애지중지했기에 아들을 품에 안고 차마 내려놓지 못했다. 한참 계단을 빙글빙글 돌며 서성일 때, 문득 허공에서 커다랗게 꾸짖는 목소리가 들렸다.
“착각해서 전 상서에게 천연두를 내린 자가 대체 누구냐, 태형 20대에 처하라! 서둘러 천연두를 치료할 약을 따로 내리도록 하라.”
그리고는 지붕 기와에서 콩을 뿌리는 듯한 소리가 나는 것이 들렸다. 품 안을 내려다보니 아들은 이미 병이 나아 있었다.
매곡선생은 소년티가 날 만큼 자란 후에는 항상 누각 위층 침상에 누워서 잠을 잤다. 어느 여름날, 우연히 선생이 다른 곳에 머무를 때, 어떤 하인이 몰래 그 침상에 가서 드러누웠다. 갑자기 정신이 멍해지더니 어떤 목소리가 호통을 쳤다.
“괘씸하구나! 괘씸하구나! 너는 뭐하는 자이기에 감히 이 침상에 눕느냐!”
잠에서 깨자 침상이 불안하게 휘청휘청거리고 있었다. 급히 일어나 보니 침상도 어느새 원래 자리가 아니라 방구석의 어두운 자리로 옮겨져 있었다. 그 뒤 그 하인은 매곡선생을 볼 때마다 황공해하였고 말을 건넬 때는 항상 무릎을 꿇고 말을 했다고 한다.
錢尙書
毗陵錢梅谷先生名春, 明祟禎間, 官南京戶部尚書. 幼患痘, 危甚, 濱死矣, 其父啟新先生以獨子鍾愛, 抱諸懷不忍棄, 方繞階行, 忽聞空中大聲叱曰: “誰錯行錢尚書痘者, 可笞二十! 速另降好痘.” 遂聞屋瓦有聲, 如撒豆然. 視懷中, 則已蘇矣. 成童後, 常臥樓上. 夏月偶他寓, 有傭私就其榻臥, 恍惚聞叱吒聲曰: “可惡! 可惡! 若何等人而敢臥此榻!” 覺搖搖不安. 急起視, 則牀已置屋角暗處, 非復臥所. 嗣後傭見梅谷先生甚畏, 輒長跪白事云.
- 전춘錢春은 상주부常州府 사람이며 자字가 약목若木이다. 만력萬曆 32년(1604) 진사가 되어 어사御史, 호광안찰사湖廣按察史, 광록경光祿卿, 호부상서戶部尙書 등을 지냈다. 방종철方從哲을 고발했다가 외지로 발령이 나고 위충현魏忠賢의 당에 탄핵을 당하는 등 굴곡을 겪었으며, 백성들에게는 존경을 받았다. 저서로 《호상오략湖湘五略》 등이 있다. [본문으로]
- 전일본錢一本(1546-1617)은 상주부常州府 사람이며 자字는 국단國端, 호號는 계신啓新이다. 만력萬曆 11년(1583) 진사가 되어 여릉지현廬陵知縣, 복건도어사福建道御史 등을 지냈으며, 장거정張居正을 탄핵했다가 관직에서 쫓겨나 평민이 되었다. 이후 경정당經正堂을 세우고 학문에 열중하여 계신선생啓新先生으로 불렸으며, “동림팔군자東林八君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태복시경太僕寺卿으로 추증되었다. 저서로 《상상관견像象管見》, 《상초像抄》, 《속상초續像抄》, 《사성일심록四聖一心錄》, 《범연範衍》, 《둔세편遯世編》 등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