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사의 스님 鏡山寺僧
전당錢塘 사람인 효렴孝廉 왕정실王鼎實은 나와 무오년戊午年(1738) 향시鄕試에 같이 합격했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16살에 향시에 합격했는데, 그 다음 단계인 회시會試에는 세 번 응시했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당시 가까운 친척이 수도에서 관리로 일하고 있어서 그를 저택에 묵게 해 주었다.
왕정실은 어쩌다가 가벼운 병을 앓게 되었는데, 곧바로 음식을 거절하고 매일 차가운 물 몇 잔으로 입술만 축이다가 친척에게 말했다.
“저는 전생에 경산사鏡山寺의 승려 아무개였습니다. 수십 년간 수행을 지속하였기에 대도大道를 거의 다 이루었습니다. 단지 평소 젊은 나이에 급제한 사람들을 볼 때면 번번이 속으로 그것을 부럽게 생각했습니다. 또 화려하고 부유한 것을 흠모하는 마음도 완전히 끊어내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여전히 두 번을 더 이승에 태어나야 했는데, 이번이 그 첫 번째 생입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화려하고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게 될 터이니, 바로 순치문順治門 바깥의 요씨姚氏 가문입니다. 어르신이 제가 수도를 떠나지 않게 잡으셨던 것도 어쩌면 정해진 운명이 아니었을까요?”
친척은 그를 달래고 위로해 주었다. 왕정실이 말했다.
“오고 가는 데는 정해진 운명이 있으니 오래 머무르기는 어렵습니다. 단지 부모님이 저를 낳아준 은혜를 갑자기 끊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종이를 찾아 부친에게 작별의 편지를 적었다. 내용은 대강 다음과 같았다.
“이 아들은 불행히 수천리 바깥에서 객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 수명이 갑자기 끝나는 바람에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을 남겨 부모님께 누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부모님의 진짜 자식이 아니고 동생 모某가 부모님의 진짜 자식입니다. 아버님께서는 예전 이러이러한 해에 다사茶肆에서 경산사의 어떤 승려를 만나 차를 마셨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제가 그때 그 승려입니다. 당시 아버님과 이야기가 참으로 잘 맞았기에 속으로 ‘이 분은 충성스럽고 성실한 분인데 조물주께서는 어찌 후사를 주지 않으시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마음이 움직인 결과 아버님의 자식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제 부인 역시 제가 어릴 때 잠깐 좋은 인연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 또한 경화수월鏡花水月이라, 모두 환상일 뿐이니 어찌 오래 머물겠습니까? 아버님께서 다행히 저를 진짜 아들로 생각하지 않고 하루라도 빨리 애정을 잊어 주신다면, 이 아들이 다행히 죄를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친척이 요씨 집안에는 언제 태어나느냐고 물어 보자 대답했다.
“제가 이번 생에 별다른 죄를 짓지 않았으니 여기서 소멸하면 바로 저쪽에 태어나겠지요. 윤회를 기다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흘 뒤 사시巳時(9-11시), 왕정실은 대야를 찾아 양치질을 마치고 간이 의자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친척들을 불러들여 평소처럼 즐겁게 웃고 떠들다가 물었다.
“아직 오시午時(11-13시)가 되지 않았을까요?”
“이제 정오로구나.”
“때가 되었군요.”
정중히 손을 모아 작별인사를 하고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그 친척이 요씨 가문에 왕정실을 찾아가 보았더니 정말로 그 날 아들 한 명이 태어났다고 한다. 요씨 집안의 가업은 운송용 노새와 말을 빌려 주는 중개업자로 재산이 수만금이었다.
鏡山寺僧
錢塘王孝廉鼎實, 余戊午同年, 少聰穎, 年十六舉于鄉, 三試春官不第. 有至戚官都下, 留之邸中. 偶感微疾, 即屏去飲食, 日啜凉水數杯, 語其戚曰: “予前世鏡山寺僧某也, 修持數十年, 幾成大道. 惟平生見少年登科者, 輒心豔之; 又華富之慕, 未能盡絕, 以此尚須兩世墮落, 今其一世也. 不數日, 當托生華富家, 即順治門外姚姓是也. 君之留我不出都, 想亦是定數耶?” 其戚勸慰之. 王曰: “去來有定, 難以久留, 惟父母生我之恩, 不能遽割.” 乃索紙作別父書, 大略云: “兒不幸客死數千里外, 又年壽短促, 遺少妻弱息, 爲堂上累. 然兒非父母真子, 有弟某, 乃父母之真子也. 吾父曾憶某年在茶肆與鏡山寺某僧飲茶事耶? 兒即僧也. 時與父談甚洽, 心念父忠誠謹厚, 何造物者乃不與之後耶! 一念之動, 遂來爲兒. 兒婦亦是幼年時小有善緣, 鏡花水月, 都是幻聚, 何能久處? 父幸勿以真兒視兒, 速斷愛牽, 庶免兒之罪戾.” 其戚問生姚家當以何日, 王曰: “予此生無罪過, 此滅則彼生, 不須輪回.” 越三日巳刻, 索水盥漱畢, 趺坐胡床, 召其戚, 歡笑如平時, 問: “日午未?” 曰: “正午.” 曰: “是其時也.” 拱手作別而逝. 其戚訪之姚家, 果于是日生一子, 家業騾馬行, 有數萬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