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자불어

[속자불어] 0838. 함원전 판관

눈기러기 2026. 6. 14.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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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원전 판관 含元殿判官


감숙중위령甘肅中衛令 호기모胡紀謨[각주:1]는 직예直隸 통주通州 사람으로, 무자년戊子年(1768)에 향시鄕試를 치러 효렴孝廉이 되었다. 스스로 말하기를 관직에 오르기 전에는 경사京師에 살았다고 했다.
밤이 되면 호기모는 문득 꿈을 꾸었다. 의장儀仗과 시종을 호화롭게 거느리고 본인은 은빛 뿔이 달린 꽃사슴에 걸터앉아 바람을 타고 움직이다가, 어느 드넓은 건물에 도착했다. 건물의 편액은 “함원전含元殿[각주:2]”이라고 되어 있었다. 옆쪽에는 관리들이 공무를 보는 자리가 설치되어 있고, 탁자 위에는 붉은 촛불이 타오르고 진흙 과일 세 접시가 놓여 있었다. 계단 아래쪽에는 장부책을 들고 서서 대기하는 서리書吏들이 많았다.
호기모는 먼저 곁방으로 가서 원래 입고 있던 옷과 신발을 전부 벗고 종이로 된 옷과 신발로 새로 갈아입은 뒤에 자리에 올랐다. 종종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을 느끼곤 했다. 옷을 갈아입고 곁방에서 나오면 바로 빗장을 걸어 문을 잠갔다. 어쩌다가 문틈이 살짝 열리기라도 하면 곧바로 옷과 신발 사이로 바람이 불어 들고 역겨운 기운이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호기모가 담당한 업무는 그저 이름을 점호하여 명부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이름을 점호하다가 간혹 알고 지내던 사람이 고생을 하게 될 것을 보면 조금 감싸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기도 했고, 또 천하절색인 미인을 보면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다. 그러면 곧바로 건물에서 불길이 일어나서 종이옷이 모조리 불타올랐다. 흔들린 마음을 가라앉히면 불도 저절로 꺼졌다. 단지 그가 점호하는 사람들은 전부 노란 기운 한 덩어리가 엉겨 붙어 있었는데, 주위의 말로는 환생하는 도문道門 사람이라고 했다.
어떤 날은 7-8세 정도 된 어린 소년을 보았다. 명부를 확인해 보니 전생에는 인화현仁和縣에 살던 소창고邵昌臯로, 호기모와 같은 해 같은 향시鄕試에 응시했다가 합격 발표가 난 뒤 바로 죽은 사람이었다. 소창고가 환생한 이 소년도 다시 환생할 예정이었다.
이런 식으로 몇 년을 지내면서 매일 밤 함원전으로 떠나다 보니 호기모는 거의 승려처럼 생활해야 했다. 마음이 매우 괴롭기도 했고 그때까지 아직 자식도 얻지 못했다. 다행히 호기모의 부친이 항주용왕杭州龍王 밑에서 서리書吏로 일했기에, 대를 이을 아이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아들을 해임해 달라고 청을 넣었다. 항주용왕이 힘을 써 준 덕에 호기모는 퇴직을 허락받았다고 한다.
호기모는 함원전에 있을 때 천부天府가 배분한 비서秘書를 아주 많이 보았다. 단지 꿈속에서는 붓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져서 베끼지는 못하고, 그저 《심경주해心經注解》와 《원군하품계격元君下品戒格》을 한 권씩 외워 왔다. 《원군하품계격》에는 살인, 강도, 간음, 광증 네 가지에 대한 규율이 아주 자세하게 적혀 있었는데 대체로 선문禪門의 계율과 비슷했다.
안타깝게도 잡무를 맡은 몇 년이 지나도록 함원전의 주인은 한 번도 보지 못하였기에 어떤 사람이 주인이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당시 항주杭州 사람 도간남屠澗南이 포정사布政使 진회陳淮[각주:3]의 관아에 머물렀다. 그때 호기모가 본인 입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을 직접 듣고, 그가 외워 왔다는 두 책을 직접 베낀 뒤에 《원군하품계격》을 가지고 돌아왔다고 한다. 만근봉萬近蓬이 전해 준 이야기이다.


○ 含元殿判官
甘肅中衛令胡紀謨, 直隸通州人, 戊子孝廉. 自言未仕時館於京師, 忽一夜夢儀從甚都, 身跨銀角花鹿, 御風而行.
至一處, 殿宇甚敞, 額曰“含元殿”, 旁設公座, 案上燃紅燭, 有泥果三盤, 階下書吏多人, 捧冊侍立. 未登座時, 先至側房將所著衣履脫卻, 盡易紙者, 頗覺寒入肌骨. 步出, 即扃閉側門. 如有時門縫略開, 即覺風吹衣履, 有穢氣衝入.
所辦公事, 唯按簿點名而已. 方點名時, 或見故人將受苦楚, 稍存回護之心; 或見絕色女子, 不無動念, 即時殿上火起, 身上紙衣盡焚. 驚心鎭定, 其火自熄. 但所點男女, 俱有黃氣一團, 云是道門中轉劫者. 一日, 見一童子, 年七八歲, 閱簿, 知前身係仁和邵昌臯, 亦擧戊子北闈, 榜發後即歿, 計此童子又轉輪矣.
如此者數年, 每夜必去, 幾與受戒僧相似, 心甚苦之. 時尚無子, 幸其父爲杭州龍王書吏, 以乏嗣例爲子求免. 龍王爲之申懇, 得准除免此差.
據在含元殿見天府所頒秘書甚多, 無如夢中擧筆, 千鈞之重, 僅默記得《心經注解》一本, 《元君下品戒格》一冊, 係殺盜淫狂四則. 其律甚細, 大抵與禪門戒律相仿. 惜當差數年之久, 而含元殿主從未得一見, 不知何許人也.
杭州屠澗南時在陳望之方伯署中, 親見其人自言如此, 並親錄二書, 戒格一本帶歸. 此事萬近蓬言.

  1. 호기모胡紀謨(1743-1810)는 직예주直隸州 노양潞陽 사람으로 자는 헌가獻嘉, 호는 식재息齋이다. 건륭乾隆 33년(1768) 거인擧人이 되었으며 감숙지현甘肅知縣, 직예주지주直隸州知州 등을 역임했다. [본문으로]
  2. 함원전含元殿은 663년 세워진 장안성長安城 대명궁大明宮의 정전正殿의 이름이나 본 이야기와 큰 관련은 없다. [본문으로]
  3. 자는 망지望之로 진정혜(陳貞慧, 1604-1656)의 증손이며 상구商邱 사람이다. 건륭乾隆 계유癸酉(1753)에 발공拔貢되어 호북포정사湖北布政使를 지내고 강서순무江西巡撫에 발탁되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