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불어

[자불어] 0717. 현판 요괴

눈기러기 2026. 6. 14.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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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 요괴 匾怪

 

어느 여름밤, 항주杭州에 사는 손孫 수재秀才가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이마 근처에 무언가가 꿈틀꿈틀하는 것이 느껴져서 손을 들어 문질렀다. 올려다 보니 건물 대들보에 붙은 현판懸板에서 수없이 많은 흰 수염이 늘어져 있고, 그 위에 거대한 항아리처럼 큰 얼굴이 보였다. 그 큰 얼굴은 눈과 눈썹까지 또렷하게 보였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손 수재는 평소부터 담력이 있는 사람이라 손을 뻗어 수염을 만져 보았다. 수염은 어루만질수록 짧아졌지만 큰 얼굴은 여전히 현판 위에 남아 있었다. 수재가 탁자 위에 발받침을 얹고 올라가서 확인해 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다시 내려와서 책을 펼치면 수염도 처음처럼 꿈틀꿈틀 내려왔다.
며칠 밤을 이렇게 지내자, 큰 얼굴은 슬그머니 탁상 위로 내려오더니 긴 수염을 펼쳐 수재의 눈 앞을 가렸다. 책을 읽을 수가 없어서 벼루를 집어 머리를 때렸더니 절에 걸린 목어木魚 같은 소리가 났다. 큰 얼굴은 사라졌다.
또다시 며칠 밤이 지났다. 수재가 막 잠을 자려고 하는데 큰 얼굴이 베개 옆으로 다가오더니 수염으로 몸을 간지럽혔다. 수재는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목침을 집어 던졌다. 큰 얼굴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수염을 휙휙 휘둘러 대다가 다시 현판으로 올라가서 사라졌다.
온 집안 사람들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당장 현판을 뜯어내어 불에 집어 던졌다. 그 뒤 요괴는 나오지 않게 되었고, 수재도 과거에 급제했다.


○ 匾怪
杭州孫秀才, 夏夜讀書齋中, 覺頂額間蠕蠕有物, 拂之, 見白鬚萬莖出屋梁匾上, 有人面大如七石缸, 眉目宛然, 視下而笑. 秀才素有膽, 以手捋其鬚, 隨捋隨縮, 但存大面端居匾上. 秀才加杌于几視之, 了無一物, 復就讀書, 鬚又拖下如初. 如是數夕, 大面忽下几案間, 布長鬚遮秀才眼, 書不可讀, 擊以硯, 響若木魚, 去. 又數夕, 秀才方寢, 大面來枕旁, 以鬚搔其體. 秀才不能睡, 持枕擲之. 大面繞地滾, 鬚颯颯有聲, 復上匾而沒. 合家大怒, 急爲去匾投之火, 怪遂絶, 秀才亦登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