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꾼 공자 抬轎郞君
항주杭州 세가世家의 왕汪 공자는 어릴 때 총명하여 『한서漢書』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자라서 18-9세가 되었을 때 훌쩍 멀리 외출했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집안 사람들이 찾아 헤맸으나 찾아내지 못했다.
한 달 남짓 지난 어느날, 왕 공자의 부친이 천교대가薦橋大街에서 삯가마를 메고 길을 지나는 공자를 발견했다. 부친이 기겁을 하고 붙잡아서 집으로 끌고 돌아가서 호되게 채찍질을 했다. 이유를 물었는데 대답하지 않기에 서재에 가두고 자물쇠를 걸었는데, 얼마 후 공자는 도망쳐 나가서 또다시 삯가마를 멨다. 이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결국 조부도 부친도 어쩔 수가 없어서 내버려 두고 포기했다. 친척과 친구들 중에 공자를 사위로 맞으려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공자는 『한서』를 외웠던 것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았다. 길거리의 깨끗하고 조용한 장소로 나오면 「고조본기高祖本紀」를 낭송하곤 했는데 낭랑한 목소리로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항주의 사대부士大夫들 역시 종종 왕 공자를 불러 들였고, 공자의 낭송이 자신이 책을 보는 것보다 낫다고들 하였다.
공자 스스로 말하기를 두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면 늑골 부근이 탁 트여서 잠도 잘 오고 식사도 잘 넘어가지만, 짐이 없으면 갑갑하여 괴롭다고 했다. 이것 말고 달리 좋아하는 일은 없었다.
○ 抬轎郞君
杭州世家子汪生, 幼而聰俊, 能讀《漢書》. 年十八、九, 忽遠出不歸, 家人尋覓不得. 月餘, 其父遇于薦橋大街, 則替人抬轎而行. 父大驚, 牽拉還家, 痛加鞭箠. 問其故, 不答, 乃閉鎖書舍中. 未幾逃出, 又爲人抬轎矣. 如是者再三. 祖、父無如何, 置之不問. 戚友中無肯與婿. 然《漢書》成誦者, 終身不忘. 遇街道清淨處, 郞誦《高祖本紀》, 琅琅然一字不差. 杭州士大夫亦樂召役之, 勝自己開卷也. 自言兩肩負重則筋骨靈通, 眠食俱善; 否則悶悶不樂. 此外亦無他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