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자불어

[속자불어] 0979. 곡불

눈기러기 2026. 6. 20. 14:43

지괴 > 속자불어

곡불 穀佛

 

호주湖州 사람 심沈 서기書記는 호가 눌암訥庵이다. 곡물 알갱이로 된 부처님 한 분을 유리 상자에 모시고 있었다.
유리 상자는 길이가 반 치(약 1.5cm)이고 상자 받침대는 높이가 2푼(약 0.6cm) 정도였다. 상자 안에는 길이 1푼 반(약 0.45cm) 정도의 커다란 곡물 알갱이 하나가 들어 있고, 알갱이에는 길이가 1푼(약 0.3cm) 쯤 되는 싹도 나 있었다.
알갱이 옆쪽에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맑은 날 밝은 햇빛 아래에서 한쪽 눈을 감고 지긋이 쳐다보면 구멍이 점차 커져서 문처럼 보였다. 오랫동안 노려보면 문 사이로 건물이 나타나고, 건물 안쪽으로 불전佛殿이 보이면서 삼보여래상三寶如來像이 나타난다. 여래상은 키가 몇 장(1장=약 3m) 정도 되어 보이고 장신구를 휘감은 모습이 장엄하며 가슴 앞에 1척(약 30cm)은 되어 보이는 만卍자 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 옆쪽으로는 문수보살상文殊菩薩像과 보현보살상普賢菩薩像이 서 있는데, 고요하고 차분하여 마치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다. 눈을 잠깐이라도 깜박이면 그 순간 모든 광경이 사라지고 그저 커다란 곡물 한 알로 보이게 된다.
심 서기의 말에 따르면 이 곡불穀佛은 호주湖州의 어떤 상서尙書 집안에 전해내려오던 물건인데, 명대에 마테오 리치 공[각주:1]이 서쪽 바다 너머에 있는 마젤란의 땅[각주:2]이라는 곳에서 가져온 물건이 중국中國까지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그 나라에서는 가을 수확기에 이 곡식이 논밭에서 자라면 주위 천 리가 황폐해진다고 한다.
내 문인門人인 왕담王曇[각주:3]이 직접 이 곡불을 보았다고 했는데, 지금은 누가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다.


○ 穀佛
湖州沈書記號訥庵, 有穀佛一尊, 弆以玻璃之櫝. 櫝長半寸, 櫝下有座, 高二分許, 中藏大穀一顆, 長一分有半. 穀有芒, 亦長分許. 穀旁有竅, 晴明於赤日之中閉一目覬之, 其竅漸大如門. 覷之久, 由門見堂, 由堂見殿, 現三寶如來像. 像高數丈, 纓絡莊嚴, 見胸前卍字紋盈尺. 旁立文殊、普賢二像, 陰深若聞人語. 眼少瞬, 歘忽不見, 仍大穀一顆而已.
據沈云此物傳留湖州某尚書家, 係明時利西公從西洋墨瓦臘泥迦州帶來者, 遂入中國. 彼國秋熟時, 此穀生田畝中, 千里赤荒. 門人王曇親見此穀, 不知今歸何處.

  1. 원문은 “이서공利西公”으로, 마테오 리치(利瑪竇, Matteo Ricci, 1552-1610)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테오 리치는 이탈리아인 예수회 선교사로 자는 서태西泰이며, 만력萬曆 10년(1582) 중국에 파견되어 1610년에 북경北京에서 사망하였다. [본문으로]
  2. 원문은 “서양묵와랍니가주西洋墨瓦臘泥迦州”이다. “서양西洋”은 동남아시아 서쪽에서 아프리카 대륙 동부까지를 아우르는 호칭으로 현대의 인도양 지역에 해당한다. “묵와랍니가주墨瓦臘泥迦州”는 가상의 대륙 ‘마젤란의 땅(Magallanica, 묵와랍니가墨瓦臘泥加)’의 번역어로 추정된다. 15-18세기의 유럽에서는 당시 이미 존재가 확인된 북반구 대륙과 균형을 맞추어 남반구에도 남극 전체를 뒤덮을 만한 거대한 대륙이 존재할 것으로 상정하고 그 대륙을 ‘마젤란의 땅’, ‘Terra Australis Incognit("the unknown land of the south")’ 등으로 불렀다. [본문으로]
  3. 왕담王曇(1760-1817)의 자는 중구仲瞿, 호는 병산甁山이다. 수수秀水 사람으로 건륭 59년(1794) 거인擧人이 되었다. 저서로는 『연하만고루문집煙霞萬古樓文集』 등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