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아씨 藍姑娘
중승中丞 왕단망王亶望1은 부친의 상을 치르느라 관직을 떠나 있을 때 항주杭州 양시공관羊市公館에 머물렀다. 어느날, 부엌에서 일하던 하녀가 갑자기 땅에 엎어졌다. 한참 뒤에 다시 정신을 차리더니 눈을 부릅뜨고 기인旗人2의 말투로 말했다.
“나는 양홍기鑲紅旗 소속 모某 도통都統 가문의 남藍 아씨이니라. 입이 마르고 배가 고프니 이 뜻을 너희 대인大人께 전하고 서둘러 나를 공양하라.”
왕 중승이 친히 찾아가서 물었다.
“그대는 기인旗人이라면서 무슨 이유로 우리 한인漢人의 집에 찾아왔는가?”
“청명일淸明日이 되었기에 내가 여러 자매들과 함께 문 밖에 나와 묘회廟會를 구경했는데, 그만 포정사布政使 국國 대로야大老爺의 행차와 마주쳐 버렸소. 의장이 화려하고 시종도 많다 보니 우리 자매들과 부딪쳐서 흩어 놓았는데, 나는 제때 피하지 못할 것 같기에 어쩔 수 없이 대인의 집으로 피난을 왔소.”
“국 대인大人은 피하고 나를 피하지 않다니, 국 대인이 내 부하에 지나지 않음을 모르는가? 그리고 그대를 친 건 국 대인인데 왜 그 집에 가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인가?”
“나는 그분이 두려워서요.”
“그렇다면 그대들 귀신도 역시 지위나 재산을 보고 태도를 바꾸는 자들이라 현직 관리만 두려워하고 전직 관리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지 않소. 전직 관리라도 정말로 훌륭한 관리라면 그 또한 두려워하오.”
왕 중승은 마음이 매우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어 제삿밥을 차리고 지전紙錢을 태워 주었다. 하녀는 곧바로 병이 나았다.
그 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중승도 재난을 당했다.
○ 藍姑娘
王中丞丁憂後, 居杭州羊市公館. 竈下婢忽仆地, 良久蘇醒, 瞪目作旗人語曰: “我鑲紅旗某都統家藍姑娘也, 口渴腹饑, 可致意大人, 作速供養我.” 王親臨問曰: “爾既係旗人, 何故到我漢人家來?” 鬼曰: “我與群姊妹清明日出門看會, 不料布政使國大老爺路過, 儀從甚盛, 將我姊妹一衝而散. 我避不及, 只得避到大人家來.” 中丞曰: “汝避國大人不避我, 獨不知國大人尚是我之屬員乎? 他衝汝, 汝何不到他家作祟?” 鬼曰: “我畏之.” 中丞曰: “然則汝輩作鬼者亦勢利, 只怕現任官, 不怕去任官耶?” 曰: “不然, 去任者果做好官, 我亦怕也.” 中丞大不喜, 不得已, 且供飯燒紙錢與之. 婢病旋愈. 未一年, 中丞及于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