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청본 王淸本
호북순무湖北巡撫 진陳 공1은 그의 아버지 문숙공文肅公2을 가족 장지에 장례 지내려고 했다.
점을 쳐서 길일까지 정한 뒤의 어느 날이었다. 진 공의 동생 승조繩祖3가 꿈을 꾸었는데 어떤 사람이 명함을 들고 인사를 하러 왔다. 명함에는 “왕청본王清本”이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13명이 문으로 들어왔는데 앉은 후에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 중 12명은 인사를 하고 떠나고 한 명만이 남아서 공에게 말했다.
“이 12명은 모두 강의 신입니다.”
진승조는 놀라서 꿈에서 깨어났다.
다음날 무덤에 도착하여 길을 방해하는 나무를 베려고 했는데, 그 나무의 나무결에 “왕청본”이라는 세 글자가 보였다. 헤아려 보니 가지가 12개였다. 크게 놀라서 결국 도끼질을 하지 말라고 명령했고, 그 나무는 지금도 여전히 그 가문의 묘역에 남아 있다.
이 일은 엄嚴 시독侍讀4이 내게 이야기해 준 것인데, 그때 엄 시독은 덧붙였다.
“제가 어쩌다가 『오색선五色綫』이라는 소설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로 이름이 왕청본이라는 강의 신이 나왔습니다.”
○ 王清本
湖北巡撫陳公, 葬其父文肅公于祖塋. 卜有日矣, 其弟繩祖, 夢有持帖來拜者, 上書“王清本”三字, 入門則十三人也, 坐無一語. 俄而十二人辭去, 獨留一人, 告公曰: “此十二人, 皆河神也.” 公驚醒. 次日到墳, 伐其樹之礙路者, 樹文有“王清本”三字, 數之十二枝也. 大駭, 遂命停斧. 其木今尚存于家.
此事嚴侍讀爲余言, 并云: “偶閱《五色綫》說部, 果載河神名王清本.”
- 진휘조(陳輝祖, 1732-1783)로 호남湖南 기양현祁陽縣 사람이다. 양광총독兩廣總督 진대수陳大受의 아들로 건륭乾隆 20년(1755) 음생蔭生으로 입사하여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郎, 호부낭중戶部郎中, 진주지부陳州知府, 안휘포정사安徽布政使, 광서순무廣西巡撫, 호북순무湖北巡撫, 하남순하도총독河南巡撫河道總督, 민절총독겸절강순무閩浙總督兼浙江巡撫 등을 지냈다. 1781년, 황명으로 왕단망王亶望의 가산을 수색하여 압수할 때 횡령을 저지르고 1783년 그 죄로 자진自盡했다. 저서로 《진휘조주고陳輝祖奏稿》가 있다. [본문으로]
- 진대수(陳大受, 1702-1751)로 자는 점함占咸, 호는 가재可齋, 시호는 문숙文肅이며 호남湖南 기양현祁陽縣 사람이다. 1733년 진사進士가 되고 서길사庶吉士로 선발되었다. 건륭乾隆 원년 편수編修가 되어 시독侍讀으로 발탁되었으며 내각학사內閣學士, 이부우시랑吏部右侍郎, 병부우시랑兵部右侍郎, 태자소보太子少保, 이부상서吏部尚書 및 복건순무福建巡撫, 직예총독直隸總督, 양광총독兩廣總督 등을 지냈다. 1751년 과로로 사망했다. 저서로 《진문숙주의陳文肅奏議》가 있다. [본문으로]
- 진승조(陳繩祖, 1733-1784)는 자는 효호孝祜, 호는 금교縆橋이다. 진대수陳大受의 셋째 아들로 1764년 호부주사戶部主事로 사관을 시작하여 광동독량도겸할광주부廣東督糧道兼轄廣州府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시집 《소원집素園集》(일실)과 《금교유고縆橋遺稿》가 있다. [본문으로]
- 엄장명(嚴長明, 1731-1787)으로 추정된다. 엄장명은 청대의 장서가이자 문학가, 금석학자로 자는 동우冬友 또는 도보道甫, 호는 용회用晦이며 강녕江寧 사람이다. 방포方苞를 스승으로 모셨고, 1762년 고종高宗의 남순南巡 때 거인舉人이 되어 《통감집람通鑒輯覽》·《일통지一統志》 등의 찬수관纂修官을 지냈으며, 1771년 시독侍讀으로 발탁되었다가 같은 해 사직하고 이후 사관하지 않았다. 여양서원廬陽書院의 주강主講을 맡기도 했다. 저서로는 《모시지리서증毛詩地理書證》·《오경산서보정五經算書補正》·《삼경삼사답문三經三史答問》·《문선과독文選課讀》·존문록《尊聞錄》 등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