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가 풀어준 기이한 원한 驢雪奇冤
건륭乾隆 43년(1778) 봄, 보정부保定府 청원현清苑縣에 사는 이李 씨氏네 딸이 서향西鄉 장가장張家莊에 사는 장張 씨氏네 아들과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다. 청원현에서 장가장까지는 백 여 리里 거리였다.
이 씨의 딸이 친정에 돌아왔다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신랑이 나귀를 타고 마중을 왔다. 돌아갈 때는 아내를 나귀에 태우고 신랑은 걸어서 따라갔는데, 가는 길에 장가장에서 20리 정도 떨어진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그 마을 사람들은 평소 신랑과 잘 아는 사이라서 아무래도 신나게 놀려댈 것 같았고 나귀도 혼자서 집을 잘 찾아가는 녀석이었기 때문에, 장 씨는 부인을 먼저 보냈다.
부인이 6-7리 정도 나귀를 몰고 갔더니 세 갈래길이 나왔다. 갈래길에서 서쪽으로 가면 장가장張家莊으로 통하는 큰 길이 나오고 동쪽으로 가면 임구현任丘縣으로 넘어가는 경계였다. 이 때 서쪽 길에서 어떤 젊은이가 마차를 덜컹덜컹 몰고 왔다. 임구현에 사는 부자 유 씨였다. 마차는 장 부인의 나귀에 바짝 붙어 따라오면서 임구현 쪽 길로 밀어 붙였다. 길은 낯설고 날도 점점 어두워지자 장 부인은 당황해서 젊은이에게 물었다.
“여기서 장가장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젊은이가 대답했다.
“부인께서 길을 잘못 드셨네요. 장가장은 서쪽이고 이건 임구현으로 가는 길이라 수십 리는 떨어져 있습니다. 시간도 늦어서 오늘 돌아가기는 어려우실 테니 제가 묵어 가실 만한 곳을 찾아 드리지요. 내일 날이 밝으면 사람을 시켜 바래다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부인은 달리 어쩔 수가 없어서 억지로 승낙했다. 길 앞에 집이 나타나서 물어보니 마침 유 씨의 소작농인 공孔 씨의 집이라서 쉬어갈 방을 빌리게 되었다. 그날은 갓 결혼한 공 씨의 딸도 친정 나들이를 와 있었는데, 공 씨가 딸에게 타일렀다.
“오늘밤은 지주 어르신이 숙소를 빌리자고 하시니 명령을 거역할 수 없지 않느냐. 넌 잠깐 남편 집에 돌아가 있어라. 어르신이 가시고 나면 다시 와서 놀다 가거라.”
공 씨의 딸은 그 말을 따라 돌아갔고, 딸이 머무르던 방에 유 씨와 장 부인이 함께 묵게 되었다. 유 씨의 마부는 방 바깥에서 자고 장 부인이 타고 온 나귀는 처마 밑에 묶어 두었다.
다음날 점심이 다 되어갈 때까지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공 씨가 창문 틈으로 슬쩍 엿보았더니 유 씨와 장 부인은 아랫목에 죽어 있고 머리가 바닥을 굴러 다녔다. 처마 밑에 묶어 둔 나귀도 보이지 않았다.
공 씨와 마부는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몰랐지만, 이윽고 공 씨가 마부에게 속삭였다.
“자네 고향이 하남河南이니 여기서 엄청 멀지? 자네가 도련님의 옷과 마차를 가지고 죽어라고 달려서 고향으로 도망쳐 버리면 어떤가? 관아에 신고했다간 자네나 나나 목숨 보전하기가 어려울 걸세.”
마부는 공 씨의 제안을 따랐다. 그날 밤 즉시 시체 두 구를 들판에 묻고 짐을 실은 마차를 몰아 떠나갔다.
유 씨의 모친은 아들이 외출한 지 한참 되었는데 돌아오지도 않고 소식도 없는 것을 보고, 마부를 추적해 달라고 임구현에 신고했다.
한편 장 씨도 아내를 뒤따라 갔는데 보이지 않자 뭔가 사정이 생겼다고 의심하고는,1 도로 청원현으로 달려가서 장인장모를 관아에 고발했다. 현령縣令은 억울한 사건이 생겼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부하들에게 자세히 알아 보라고 명령했다. 때마침 도박을 좋아하는 곽삼郭三이라는 무뢰배가 시장에 나귀를 팔러 나왔는데, 장 씨가 신고한 부인의 나귀와 똑같이 생긴 나귀였다. 곽삼을 붙잡아서 심문해 보니 곽삼은 원래 소작농 공 씨의 딸과 사통하는 관계였는데, 공 씨의 딸이 친정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창문으로 몰래 들어 갔다가 남녀 둘이 자는 모습을 보고 순간 울컥해서 둘을 죽였으며, 그 김에 나귀까지 훔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령은 다시 소작농 공 씨를 불러 들였다. 끈질기게 심문한 끝에 시신과 머리가 있는 장소를 알아내어 현령이 직접 시체를 발굴하는 현장을 참관했다. 공 씨가 말한 자리에서 흙을 3척(약 1m) 정도 파냈더니 정말로 시체 하나가 나타났는데, 웬 늙은 스님의 시체였다. 좀 더 깊게 파 보니 그제야 곽삼에게 살해당한 두 시신이 나왔다. 장 부인의 원한은 풀렸고 유 씨의 죽음도 밝혀졌지만, 스님은 어쩌다가 여기에 묻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 고민하던 와중에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면서 비가 쏟아졌다. 낡은 묘당廟堂에 들어가 비를 피하는데 사람이 지내는 흔적이 없어 보이길래 이웃에 확인했더니 이웃이 대답했다.
“전에는 이 암자에 스승과 제자 두 스님이 있었습니다만, 나중에 스승은 여행을 떠나고 제자 쪽도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근처 사람들에게 스님의 시체를 확인하게 했더니 다들 입을 모아 말했다.
“여행을 떠났다던 그 스님입니다.”
곧바로 제자라는 승려를 체포하도록 명령했다. 하남河南 귀덕부歸德府의 경계선까지 수색해 나간 끝에, 이미 머리를 기르고 아내를 맞아 두부 가게를 운영하는 것을 발견했다.
심문해 보니 스승이 죽은 것은 제자의 지금 부인 때문이었다. 제자의 부인은 원래 스승과 사통하던 사이였는데 그 뒤 제자가 성장하자 제자와도 사통하게 되었다. 스승이 그 사실을 못마땅해 하길래 둘이 의논하여 스승을 죽이고, 묘당을 버리고 멀리 달아나서 부부로 지내왔다는 이야기였다. 법대로 처벌했다.
○ 驢雪奇冤
乾隆四十三年春, 保定清苑縣民李氏女, 嫁與西鄉張家莊張氏子爲室, 相距百餘里. 李女歸寧月餘, 新郎跨驢來迎, 令妻騎驢, 而己步行於後. 路經某村, 離家僅二十里. 緣此村居民素與新郎熟識, 必多調笑, 且驢亦熟識歸路, 張乃令妻先行. 至六七里許, 有三叉歧路, 過西爲張家莊大路, 過東則任丘縣界. 有一少年, 控車自西道轆轆而來, 係任丘豪富劉某, 將張妻驢衝向任丘道上, 相逼而行. 天漸晚, 張妻心慌, 問少年曰: “此地離張家莊幾何?” 少年答曰: “娘子誤矣, 張家莊須向西而去, 此是任丘大路, 相距數十里. 天晚難行, 當爲娘子擇莊借宿, 天明即遣人送往, 何如?” 張妻無奈, 勉强允從. 至前莊, 係劉之佃戶孔某家, 備房安歇. 其時適孔佃之女亦新婚歸寧, 孔謂女曰: “今晚業主借宿, 不能違命, 汝當暫回夫家; 侯業主去後, 再來迎汝.” 女從而歸. 其房爲劉、張共宿之所. 劉之車夫宿于房外, 張之騎驢繫於檐下.
次日將午, 不見啓戶. 孔佃窺於窗隙, 見兩尸在炕, 頭俱在地, 檐下繫驢亦失, 孔佃與車夫顫慄莫制. 佃乃密語車夫曰: “汝家河南, 離此甚遠, 何不載彼衣物速行竄歸, 一經到官, 則爾我身命難保矣.” 車夫從之. 是晚, 即野瘞兩尸, 御車載物而去.
劉母見子久出不歸, 杳無音耗, 即在任丘縣控追車夫. 張郎追妻不見, 疑有別故, 復又趕至清苑控告其岳父母. 縣官疑有冤, 飭捕密訪. 其時有嗜賭無賴之郭三, 鬻驢于市, 恰與張供毛色相符. 向郭盤詰, 始知郭三向與孔佃之女有私, 孔女歸寧, 郭從後窗潛入, 見有二人共寢, 一時氣忿, 殺此二人, 幷盜此驢. 縣今復喚孔佃, 根詰尸首所在, 親往起尸. 開土三尺, 赫然一死人, 乃禿頭老和尚也. 復又深掘, 得所殺兩尸. 張冤既雪, 劉死有踪, 而和尚之尸又屬疑案.
正懷疑間, 天忽陰雨, 乃避雨古廟, 寂無人迹. 詢諸鄰保, 云: “此庵向有師徒二僧, 後以師出雲游, 徒亦他往矣.” 即同鄰保往視僧尸, 咸云: “此即雲游之僧也.” 遂緝拿其徒. 訪至河南歸德地界, 已蓄髮娶妻, 開張豆腐店. 究其師死之由, 緣僧徒所娶之婦, 向與其師有奸, 後徒漸長, 復與此婦私通. 其師每有不平, 故共謀殺其師, 棄廟遠竄, 遂成夫婦, 乃置之法.
- 장인장모가 부인을 몰래 빼돌린 뒤 다른 사람과 다시 혼인시키려고 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는 해석이 있다. [본문으로]